산골 이야기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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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골에는 봄이 늦게 온다. 도시에서 개나리가 피어도 산골의 겨울은 미련이 많은 고독이다. 얼음이 녹고 진달래가 피면 산골의 봄은 농부들의 바쁜 손길로 시작한다.
2. 노란 개나리의 재잘거림이 지나면 수줍은 벚꽃과 진달래의 미소가 다가온다. 이들이 사라질 때 뿌려놓은 눈물이 하얀 배꽃이 되고, 사과 꽃이 된다. 벌과 나비가 따스한 햇살아래 꽃들 사이로 여행을 다니고 개구리의 수다스런 이야기는 밤이 될수록 깊어진다.
3. 보리밭에는 이삭이 여물어가고 보리 피리소리 향수를 부른다. 서래질 끝난 논에는 모내기준비를 하고 밭에는 긴 겨울을 지난 양파, 딸기가 안으로 커가고 있다. 자그만 일에도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거둘 때에 수확할 것이 없다. 농사일로 주름지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굳은 심이 박힌 손에는 억척스레 살아온 세월이 고서라니 녹아있다.
4. 시냇물에는 피라미, 중태기, 치어들 이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고 연초록으로 피어난 잎마다 햇살 가득 쏟아진다. 자전거를 타고 저수지에 오르면 가득 채워진 넉넉함이 풍요로움을 전한다. 돌팔매질을 하면 매끄럽게 미끄러져 작은 그리움들을 멀리 멀리 보낸다.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의 부드러움과 간지럽히듯 속삭이는 봄의 유희. 팔을 뒤로 젖혀 바람을 안으면 가슴 가득 담기는 서늘한 따스함.
5.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면 아직 시린 물의 요정의 배시시 피어나는 웃음에 물의 차가움과 햇살의 따스함에 어린아이의 미소를 짓는다. '아직 가지 않았구나'하면 '바다로 여행중이야'하고 사라진다.
6. 집안의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겨우내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닦았다. 열린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하얀 배꽃, 복사꽃, 야생화, 사과꽃, 살구꽃... 결실을 위한 꽃피움이 생의 아름다움으로 유혹한다.
7. 어머니께서 산에서 캐온 봄나물들은 입맛을 잃은 식욕을 돋군다. 해산할 때가 다된 '마리'와 곁의 '미르'는 새끼가 무척 기다려지고 보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놀아주지만 이제 너무 커버려 둘 다 산책시킬 수가 없다. 또 서로 떨어지기 싫어하고... 봄이 온 산골마을은 조용하지만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8. 길가에, 논둑에, 강가에 핀 야생화를 보면 그 작고 섬세함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름조차 없는 꽃들이어도 그렇게 자기만의 꽃을 향기를 피워내는 자존심과 당당함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화려하고 향기 진한 꽃에 비해 상품가치가 없지만 이 들이, 강가와 산이 아름다운 것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기 때문일 거다. 기형이 되어버린 개량된 꽃이 아니기에 꾸미지 않은 깨끗한 자태와 맑은 향기를 전한다.
10. 산골의 봄은 가을만큼이나 짧다. 시간의 약속을 지켜 씨를 뿌리고, 기르고, 거두어들이는 것이 산골 사람들의 일이다. 힘든 일에 비해 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적지만 따스한 집과 스스로 지은 농산물 그리고 객지에 있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족한다. 투박하고 진한 부모님의 사랑은 생각만으로도 눈물겨운 따스함을 전한다.
11. 가을에 뿌린 것은 거두어들이고 봄에 뿌린 것은 가을에 수확한다. 그 사이 상추, 감자, 부추, 잔 파, 무, 열무, 배추... 화초대신 심겨진 채소와 감나무, 배나무 심겨진 마당에 평상을 펴면 풍요로운 식탁이 된다.
12. 밤이 되면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저수지 물 내려오는 소리가 즐거운 음악이 된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별자리보다 많은 별들의 이야기에 아르테미스 은빛전차가 사라질 때까지 상상의 날개를 달고 여행을 한다.
13. 꿈꿀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둔 마음의 고향. 저수지에서 바라본 마을의 사계가 내 삶의 여행에서 지칠 때 위로가 된다. 생명력이 넘치는 들과 산에서 근심, 스트레스, 미움들을 털어 내고 싱그러움과 깨끗한 푸르름을 담는다. 살아있음에 함께 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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