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 16
계절이 문득 내게 다가오듯이 텅 빈 인연도 어느 날 그렇게 알게된다.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하얗게 증발해버리고 단절되어버린 사면의 벽속에 표정 없는 얼굴을 바라본다. 방안의 사물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적어도 얼핏보기에는. 나또한 거울을 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와 오늘이 구분되지 않고 미래 또한 확실하기 힘들다. 따뜻한 차와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진다. 한 명, 두 명 이렇게 넘어가도 멈출 줄 모르다가 텅 빈 공간에서 정지된다. 다시 시작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었던 공간들은 시간들은 사라졌으므로... 낯설 기만한 것은 바로 내 모습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아득한 지도. 잊고 있었나 보다. 바보처럼 잊고 있었나보다. 혼자 가는 길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