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스케치
1
비와 파도 그리고 바람.
비내리는 바다에서 불빛이 사람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유채꽃과 검은 돌과 야자수.
밭으로 연결된 마디마다 돌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보다.
떠나오면 그리움이 하나의 긴 강을 이루는∼
회색빛 땅과 하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흔적만이 남아있다.
정랑의 나무가 사람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그것도 세월에 밀려가고 있다.
2
날씨의 변화는 움직임을 뜻한다.
잠시 개었다가도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가 내리고
소나기가 지나면 다시 자욱한 안개가 된다.
가리워진 것들이 잠시 시야에 들어왔다 아득히 멀어진다.
천제연 폭포는 안개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고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쳐다보았다.
높은 곳에 있으면 두려움과 함께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태양 가까이 까지 날고 싶은 마음속의 욕구가 가끔씩 솟구치는 모양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하지만 폭포는 날개가 없어도 추락하고
또한 비상을 꿈꾸는 긴 시간을 여행한다.
3
영천사에 갔다.
3층목탑형식의 법당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법고, 좌측에는 종루가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비로자나불의 시선이 바다를 향하고
거대한 모습보다 자비로운 시선에 합장을 했다.
천지연 폭포.
갈 수기인지 오른쪽만 세차게 떨어지고 왼쪽지류는 약했다.
가늘게 내리는 비속에 조금씩 젖어가고
마음도 무겁게 갈 앉았다.
4
성산 앞바다는 비취 빛깔이 난다.
성산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계단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옷과 우산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99봉오리가 둥글게 감싸안은 분지에는 갈색의 풀들이 겨울옷을 벗고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정상에서면 아무 것도 없지만
허허로움으로 부둥켜안고 올라온 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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