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이야기
1.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에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늦게 비치는 햇살은 서리 내린 땅을 녹이고
이내 산너머로 빛을 거두어간다.
2.
추수가 끝난 들녘에는 볏단 쌓여있고
양파 심은 논에는 푸른 머리 자라고 있다.
장마를 지나 온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 준비를 한다.
긴 겨울을 지내는 요긴한 찬거리로
흩어진 가족들을 모으는 연례 행사다.
3.
무구덩이를 파서 저장을 하고
뽑은 배추는 다듬어서 소금에 절이고
뽑혀진 밭고랑위로 하루해 길게 늘어진다.
아궁이에 불때고 뜨거운 구들에 등을 붙이고
하루의 피로를 푼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배추에 쌈 싸먹고
고구마, 밤 묻어 두었다 긴 밤 따뜻한 속살을 배어먹는다.
4.
절인 배추를 씻어내고
물을 빼고 양념을 골고루 바른다.
차곡차곡 김장독에 넣어두고
또하나의 일이 끝났음에 미소짓는다.
갓버무린 김치로 저녁을 먹고
힘든 일이 끝난 후의 이야기 이어진다.
5.
자식들이 떠나면 적막해지는 고향집.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면 남은 마음은 그립다.
겨울이 긴 것은 흩어진 기운을 모으는 시간이기에
안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나 보다.
6.
외로움은 마음을 병들게 하고
쇠약해지는 육체는 더욱 외롭게 하나보다.
언제인가부터 집을 떠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부모님의 쓸쓸한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는다.
효를 다하지 못하는 자식의 죄스러운 마음......
7.
벽돌집으로 바뀐 마을의 저녁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젊은이 빠져나간 마을에는 저녁밥 짓는 연기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는 사람 없어졌다.
편리해진 대신 기름 값을 걱정하는 한숨으로
겨울은 깊어간다.
8.
마을 저수지위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돌집으로 바뀐 후에 서로간의 왕래가 줄어든 마을은
더욱 조용하다.
편리한 만큼 잃어 가는 것은 작지만 소중한 인심.
굳게 닫힌 문으로 단절되어 가는 마음을 느낀다.
9.
물이 차가워질수록 이불 속의 몸은 온기를 찾아 헤맨다.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기척에 잠 깨어 밖을 나서면
하얀 서리와 얼어붙은 땅이 전하는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떤다.
유난히 늦게 비치는 햇살이 정오 가까이 되어서야 창으로 비치면
단조로운 산골의 나들이가 시작된다.
10.
새로 생기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산골 마을.
새로운 것과 옛 것과의 골은 깊어지고
이내 무관심해지는 것은 겨울이 되었기 때문일까.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작태가
산골 마을을 병들게 하고 있다.
힘있고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를 가진 자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하지 않은 소산물은 어둠이다.
11.
산골의 밤은 유난히 어둡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빛난다.
별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별들이 어두운 공간을 밝힌다.
은빛 억새풀에 새하얗게 부서지는 그리움들.
겨울은 마무리와 계획의 계절이다.
12.
저수지와 시냇가에서 피어오른 안개로 가려진 마을.
군불 때는 연기에 조금씩 걷혀간다.
가리워진 것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드러나면 선명해지는 명암의 대비.
비교하지 않으면 비교 당하지도 않으리라고 했다.
13.
물질에 대한 욕망은 쉬 떨치기 힘든 유혹.
잊고 살던 이들에게 편리함과 비교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만족함과 감사함을 알던 마음을 욕망으로 추락시킨다.
부서지고 훼손되기는 쉬우나 복구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다.
14.
단조로운 생활 속에 지치는 것은 번잡하게 산 기억 때문일 거다.
마음 다스리지 못하고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연 속의 삶도 어려우리라.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독특한 향기를 피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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